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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가 매국사관 이 땅에서 추방되는 원년 되기를!
- 역사의병대 새해 외침 2 /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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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년 전인 1896년 병신년은 크게 혼란스러운 해였습니다.
두 해 전인 갑오년(1894)에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는데,
그때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라는 노래가 유행했습니다.
녹두꽃은 바로 녹두장군 전봉준을 뜻하는 말인데, 전봉준이 실패하면 조선의 운명은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노래입니다.
또한 “가보세 가보세/을미적 을미적/병신되면 못가리”라는 노래도 유행했습니다. 가보는 갑오년, 을미는 을미년(1895), 병신은 병신년을 뜻하는 말입니다.
천도교 계통에서 발간하던 『별건곤』 1928년 8월호에서 청오(靑吾)라는 필자는
「민중운동(民衆運動)으로 일어난 갑오동학란 비록(甲午東學亂 秘錄)이란 글에서
이 노래에 대해 “동학란이 갑오년에 성공을 해야지 갑오년이 지나고 병신년에 다다르면 동학은 실패된다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노래대로 갑오년에 동학농민혁명이 실패하면서 조선의 운명은 크게 위태로워졌습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 의병들이 일어났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6만여 명에 달하는 일본군이 쳐들어오자 선조를 비롯해서 높은 벼슬아치들은 대부분 북으로 도망갔습니다.
이때 일본군이 점령한 적지에서 의병을 일으킨 사대부들은 정인홍이나 곽재우처럼 평생 벼슬하지 않고 학문을 닦던 재야선비들이었습니다.
남명 조식의 수제자였던 정인홍은 당시로서는 아주 고령이었던 58세의 나이에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그 수하로 몰려들었습니다.
임금과 고관들이 도망간 나라를 되살린 것은 재야의 선비들과 일반 백성들이 주축이 된 의병들이었습니다.
조선조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종과 민씨 정권은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서 청나라 군사를 불렀고, 이는 일본군의 진주로 이어졌습니다.
일본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친일내각을 수립시키자 1895년 말부터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고, 친일내각을 붕괴시켰습니다.
그러나 고종과 지배층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나라는 계속 위기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심지어 러일전쟁 직전인 1904년 2월 23일,
하야시 곤스케 일본 특명전권공사와 외부대신 서리 이지용 사이에 이른바 ‘한일의정서’가 체결되는데,
이지용은 일본군이 조선 땅을 마음대로 조차할 수 있다고 허용합니다.
‘한일의정서’를 체결할 때 하야시는 한국의 외부대신 서리 이지용에게 1만 원의 거금을 건넸습니다.
이지용은 1만원을 받고 이미 나라를 팔아넘긴 것입니다.
일제의 한국 주차군 사령관은 ‘한일의정서’를 빌미로 1904년 7월 2일 ‘군용전선 및 군용철도 보호에 관한 군율’을 발포하는데,
“1. 군용전선·군용철도에 해를 입힌 자는 사형에 처함
2. 정(情)을 알고 범인을 은닉한 자는 사형에 처함
3. 가해자를 체포한 자는 일금 20원을 상여함. 가해자를 밀고하여 체포케 한 자는 일금 10원을 상여함……”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본군이 한국 땅에서 한국민을 마음대로 처형할 수 있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이때 일제의 군용전선과 군용철도에 해를 입힌 자가 누구겠습니까? 모두 의병들입니다.
이렇게 1904년에 이미 나라를 팔아먹은 이지용은 그 후 내부대신으로 승진해 1905년에는 을사늑약을 찬성하는 을사오적이 됩니다.
또한 나라가 망한 뒤에는 매국의 대가로 백작(伯爵)의 칭호와 막대한 은사금을 받습니다.
나라 한 편에서는 민종식, 이인영, 허위 같은 선비들과 신돌석 같은 평민들이 의병의 기치를 들고 구국에 목숨을 걸 때 이지용을 비롯한 을사오적들은 매국으로 매진했습니다.
일제는 1910년 8월 29일 하루에 대한제국을 점령한 것이 아닙니다.
그전에 대한제국의 외교권은 물론 경찰권과 검찰권, 그리고 사법권을 빼앗아 수많은 의병들과 애국지사들을 사형시키거나 감옥에 쳐 넣었습니다.
1910년 8월 29일의 이른바 강제 병합조약은 이미 장악한 나라를 법적으로 추인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새로 맞이하는 병신년은 두 갑자 전 병신년의 재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일제는 나라를 점령하기 전에 역사부터 조작했습니다.
한사군은 한반도 북부에 있었다는 ‘한사군=한반도설’과 한반도 남부는 일제가 점령하고 있었다는 ‘임나일본부설’입니다.
해방 이후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결과 지금까지도 ‘한사군=한반도설’과 ‘임나일본부설’의 변종인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은 한국 학계 일부에서 이른바 정설(定說)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일본 극우파 아베 내각은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일본이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을 때 첫 번째 전쟁 대상은 늘 우리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우리의 역사를 지켜내고, 아직까지 남아 있는 일제 식민사학, 즉 조선총독부 매국사관을 걷어내야 합니다.
병신년 새해는 부디 이런 매국사관이 이 땅에서 추방되는 원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아직도 지하에서 눈을 감지 못하고 계실
백암 박은식, 석주 이상룡, 무원 김교헌, 단재 신채호 등 한 손에는 총을 들고 한 손에는 붓을 들었던
독립운동의 선조들이 이제는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는 원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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